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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히던 악몽에서 벗어난 방법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내가 이길 수가 없구나...!





















제어되지 않는 악몽을 꾸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스스로 만든 죄책감,

마귀가 내게 건네는 참소에 휩싸여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다 너 때문이야, 아버지가 저리되신 것은 가난한 살림에 육지 대학까지 들어간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혜린이가 죽은 것은 얌체같이 자기만 아는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귀신들은 특히나 내 인생에 어떤 초조감이나 거절감, 죄책감이 건드려질 때마다 내 꿈속에 나타나 나를 쫓아다녔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나는 그 괴로운 악몽의 날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힘들 때면, 비슷한 악몽을 꾸곤 했다. 무의식에서는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는 죄인이야”라고 손가락질하며 나를 자신들의 종으로 삼으려는 악한 영들의 공격 앞에서 나는 ‘맞아, 나는 죄인이야’라며 고개를 떨군 채 도망 다니곤 했다.


나는 십자가를 부적처럼 내밀며 그들에게 “물러가라” 외치기도 하고, 다시 저쪽 끝으로 도망가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는 떠나가라”라며 목청껏 소리도 질러봤다.


하지만 그 “예수 이름으로”라는 외침이 그저 입에서 나오는 말에 불과할 뿐, 나의 인격 저 아래까지 내려간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꿈속에서 나는 하나님과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를 비웃는 적들의 칼끝이 내 코앞에 다다랐다.

죽을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불렀다.


“하나님, 차라리 저는 죽으렵니다. 제 몸과 영혼을 받아주세요!!”


나는 더 이상 적들과 싸울 기력이 없었다.

내 힘은 적들의 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내가 택한 것은 하나님 안에 내 영혼육을 완전히 내던지는 일이었다.


살고 죽는 것이 적들의 손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제 더는 나 홀로 마귀들과 싸우려고 버둥거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졌다.

그래서 나는 적들의 밥이 되기 직전의 그 0.001초 사이에 하나님의 품 안에서 죽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 품 안에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내 전인격의 고백을 하며 나는 내 모든 힘을 빼고 그분께 내 전 존재를 맡겼다.


그 순간, 놀랍게도 모든 게 평정되었다.


보이는 하나님이 나타나 그 크고 넓은 날개로 나를 품어주셨다.

그것을 본 적들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비로소 긴 여행 끝에 안도의 숨을 내쉬듯 마음속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는 이제야 완전히 죽었습니다.”

평소 즐겨 암송하던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 2:20


이후 나는 그와 같은 악몽에 다시는 시달리지 않았다.

내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에서 ‘나’라는 자아가 이미 죽었으니 적들이 다시 꿈속에까지 쫓아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의 연장이었는지 며칠 뒤 나는 꿈에서 혜린이를 봤다.

그 친구와 내가 잔잔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 상류에 다정히 앉아 있었고,

거기서 나는 혜린이에게 말했다.


“혜린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 그거… 정말로… 미안해.”

이 말을 하면서 내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혜린아, 나는 나밖에 모르는 죄인이더라. 그래서 나는 많이 괴로웠어.

그런데 이제 나는 그런 나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100퍼센트 믿으려고.

나는 이제 주님의 보좌 앞으로 뻔뻔스럽게 나아갈 거야.”

꿈속에서 나는 히브리서 말씀을 떠올리며 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히 4:16


어떤 목사님은 이 말씀의 ‘담대히’라는 단어를 ‘뻔뻔스럽게’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셨다.

뻔뻔스럽지 않고서는 흠 많고 죄 많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믿음을 가지려면 이 ‘담대함’, 즉 ‘뻔뻔스러움’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셨다.


혜린이에게 ‘뻔뻔스럽게’란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나의 죄됨을 말하며, 이제는 나도 그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담대히 하나님께로 나아가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단 하나, 해석이 분명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혜린이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날..혜린이 집에서 함께 보냈던 그 밤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처음으로 들려주었다.


그날 밤, 친구는 내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소리 높여 외쳐댔다. 이제 자신은 대학에도 갈 수 없게 되었노라 말하며 울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더니 갑자기 종이 한 장을 꺼내 십자가를 크게 그리며 내게 말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들을 꿈꾸며 발버둥을 쳐도 그 모든 몸부림이 다 허망하다는 전도서 말씀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만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좋은 데로 인도한다는 얘기였다.


미션스쿨에 다니며, 복음을 들었지만 이 친구는 자신을 거두어준 불교를 믿는 고모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절대로 예수를 안 믿을 거라고 말했던 친구였다. 그런데 모든 게 급격하게 무너지던 그 시점에 혜린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며 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외치는 방식이 나는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나 내 얘기를 다 들은 남편은, 그때 그 친구가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신 게 아니었겠냐며 내 어깨를 다독거렸다. 


병중이라 인간이 듣기에 산란한 고백을 했을지라도,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혜린이의 그 분명한 십자가 신앙고백을 받으셨을 거라는 얘기였다. 혜린이의 아픔을 아시고, 이후 병동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것도 아시는 하나님께서, 친구에게 이미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을 거라는 소망의 말도 덧붙였다.


그 말에 나는 며칠 전에 꿨던 꿈속 장면을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친구는 내가 “이제 나는 나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100퍼센트 믿으려고.

나는 이제 주님의 보좌 앞으로 뻔뻔스럽게 나아갈 거야”라고 말할 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치 내게 “너 그거 이제 알았니? 예수님만이 길이고 생명이신 걸 나는 진작 알았는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장면을 기억하던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 혜린이를 떠올리는 내 마음 안에는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닌 소망과 감사가 주된 감정이 되었다. 나는 이제 혜린이를 슬프지만 평안과 소망 중에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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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나는 기도하기로 했다 _ 한근영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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