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정

불안함은 경쟁 속에서 이것을 먹으며 커진다(학원이 부모의 지갑을 여는법)



한국의 학교 교육은 경쟁을 동력으로 삼아왔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교육에 대한 투자의 집착으로 이어졌다. 혹시라도 자신의 무능과 실수로 자녀가 경쟁의 앞자리에 서지 못하게 될까 염려한다.


학원 수강생을 많이 모집하려면 현재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부모가 세태와 상황을 얼마나 모르는지를 설명하면 된다. 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자녀가 경쟁에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주면 부모는 지갑을 연다. 대부분의 사교육 시장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커간다.


이런 사회적 흐름에 크리스천 가정도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경쟁 구도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하버드대에서 만난 여러 나라의 학생들도 열등감에 눌려있었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자신을 몰아가는 것같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이들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우월감과 자신감을 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재들이 모여 있는 새로운 경쟁 구도에서는 쉽게 열등감에 빠져들었다. 특정 영역에서 자기보다 잘하는 누군가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위축되고, 생각이 편협하며,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한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잘 안다. 당시 나는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문제가 많은 모습임을 알지 못했고, 누구도 내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은 무의미하다. 누구를 이겨서 얻는 기쁨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세상은 넓고 그 가운데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장점들을 보고 배우면 된다. 경쟁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믿음은 실재하는 능력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공급을 경험하면 내면에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면 내 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다. 내 성취 여부에 전전긍긍하며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심지어 교회 안에 있는 신앙인들조차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아서 성취에 목을 맨 채 끌려 다니는 삶을 산다. 그리고 동일한 목표를 자녀에게도 요구한다.

“엄마는 좋은 대학에 못 갔으니까 너라도 그것을 이뤄야 한다. 내게는 상황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너에게는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지원해줄게. 나는 기회를 놓쳐서 이렇게 살지만, 너만큼은 그 아픔을 반복해서는 안 돼.”


이런 이야기를 크리스천 가정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충만으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자녀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자녀가 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자녀가 부모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도 그 성취로 인한 부모의 행복이 지속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아이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이끄시는 길을 찾아갈 때 비로소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려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믿음 위에 기초를 세워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자녀 교육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으로 충분함을 믿음으로 고백하는가’에 달려있다. 이 믿음만이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해준다.
<가정, 내어드림> 이용규 



흔들리는 세상을 따라가다보면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찬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주님을 붙잡을 때야말고 흔들리는 세상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방법이다. 
하지만 성경은 고루하고 옛것이라 생각하여 덮어두고 세상의 교육서과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듣고 해결하려고 합니다. 세상을 향한 귀를 주님께로 세상을 향해 정보를 찾던 눈을 감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어떨까요?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께 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