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기도하기 전에는 내 안에 이중적인 생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기도하자 깨달았다.
말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교회 개척이 내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니 후원도 내 것인 줄 착각이 되었고,
헌금하시는 분도 내게 하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였다.
3만 원도, 폐지 주워 사시는 할머니도,
나도, 개척 사역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는데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모두 내 것처럼 생각했다니 슬프고 부끄러웠다.
내가 중간에서 그동안 마음으로 가로챈
다른 헌금은 없는지 되뇌며 회개했다.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를 내 것이라 생각했던 교만도 회개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그보다 큰 것으로 과부에게 갚으실 것이었다.
내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문제였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3만 원을 받았다.
다른 길이 없었다.
권사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3만 원이었고,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시는 3만 원이었다.
그 중간에서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하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납작 엎드렸다.
개척 사역을 준비하는 내내 할 말이 없었다.
누가 10만 원을 보내든 100만 원을 보내든,
계속 그 3만 원이 생각나서 울었다.
기도하다 울고, 커피 사 마시다 울었다.
사역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이 다 그 3만 원으로 보였다.
1만 원도 1천 원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기도하며 사용하는 법을 나는 거기서 배웠다.
참! 발견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것도 기도하며 깨달은 내용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거만한 판단을 했다.
그 권사님은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자체는 구제의 관점에서 옳을지 몰라도,
헌금 행위 앞에서는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누구길래 헌금 행위를 감히 막아서겠는가?
전부를 드리는 헌신자를 “축복하소서”라고 하기보다
“불쌍하다”라고 판단하는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헌금을 보내던 2년간 계속 질문하셨다.
정말 내가 주님의 종인지 아니면
내 일을 하는데 주님을 이용하는 인간인지 시험하시는 것만 같았다.
매달 3만 원을 받을 때마다 내 위치를 재확인했다.
나는 독거노인 권사님이 보내주시는
3만 원보다 아래에 있어야 하는 존재다.
작은 자다. 섬기는 자다. 헌금을 받는 사람이다.
개척자다. 목사다. 사역자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다.
_
책 <지키는 기도 _ 송준기 > 중에서
>> https://mall.godpeople.com/?G=9791165040529
_
★ 말씀
아무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사는 과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 딤전5:5, 쉬운성경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 시편 142:4,5